2008년 12월 24일 수요일

크리스마스에 산타를 태우다

탐욕스런 자본가에 의해 만들어진 산타라는 족속 때문에,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물을 받을 수 없는 계급에 속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계급에 속하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슬퍼할 것인가.

착한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준다는 설정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모든 아이들은 착하다. 착하지 않은 아이란 애초부터 없다. 누구를 위한 '착한 아이'인가. 선물 따위 알량한 미끼로 순수한 아이들의 자유와 개성을 억압하고 노예화하는 산타는 용서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착한 아이여, 총을 들어라. 그리고 너의 방 창문을 두드리는 산타를 쏴라.

 

- 아수라장 정태룡의 프리토크 中 -

 

 크리스마스 이브고 하니 크리스마스 특집 포스트입니다. 2005년의 크리스마스. 솔로로서의 마지막 크리스마스였지요. 일요일이 겹쳐버린 크리스마스는 일정이 없던 저에게 그냥 주말과 다를 것 없는 휴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된거 그냥 잠이나 푹 자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친구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야, 지금 빨리 홈플러스로 나와!"

 

 제가 국문과 출신은 아니지만 한때 국어과목의 학원강사까지 바라보던 몸이었기에 저 짧은 친구의 한마디는 전화세를 줄이기 위해 굉장히 함축되어있지만 상당히 많은 전제가 내포되어 있으며 문맥과 상황에 따른 관련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표층적인 발화만으로는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고 상황을 고려하여 봤을 때 저 전화의 의미는

 

 "크리스마스에 여자친구도 없이 방구석에서 궁상떨지 말고 빨랑 나와. 우리가 놀아줄께."

 

 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청자는 그런 의미를 쉽사리 추론하는 것이 가능하지요. 크리스마스 아침부터 남자 9명이 모여서 뭘하자는 걸까. …라고 해도 어차피 할 것도 없어서 약속장소로 나갔습니다.

 

 넵, 9명. 그 당시 저희 모임 멤버들은 전부 솔로였습니다. 친구들과 합류하여 뭘 하려고 하냐고 물어보니 다같이 공터에서 양푼에 비빔밥을 비벼먹는답니다. 아니, 크리스마스에 비빔밥이라니.

 

마치 크리스마스에 족발을 먹는 듯한 부조화

 "야이 쌉새들아. 비빔밥 먹자고 날 부른거냐?"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발상에 투덜거리고 있으니 친구 한명이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걱정마. 산타도 태울거야."

 

 산타를 태운다! 전국 수백만의 솔로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 처절함만 집어 넣고 있는 메리 크리스마스의 원흉인 산타클로스. 그렇습니다. 저희는 단순히 놀기 위함이 나니라 그를 처치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의 목적이 생기자 비참한 솔로들의 모임이 아닌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의 파티가 되었습니다. 홈플러스에서 양푼을 사고 나물을 사고 참기름을 사고 고추장을 사고 이제 마지막으로 산타 인형을 사려고 하는데… 산타 인형이 조홀라 비싸네요.

 

양말에 매달린 산타

 역시 이 자본주의의 개. 그래서 여자친구도 없는데 돈까지 없던 우리는 결국 현실과 타협하여 산타가 붙어있는 크리스마스 전용 벽걸이 양말을 샀습니다(…).

 

 마땅한 공터를 발견하지 못하여 학교 운동장으로 위치를 변경하였지만 가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 기름도 1리터 정도 샀으니 모든 준비는 갖추어졌습니다. 하지만 선조들께서 말씀하시기를 금강산도 식후경이랬지요. 그래서 일단 양푼에 밥을 비벼 먹었습니다.

 

*실물은 사진보다 클 수 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하얀 눈이 내린 운동장에서 먹느라 경장적으로 추웠지만 위생장갑 하나 끼고 다같이 둘러 앉아 손으로 먹는 맛은 꽤나 각별했습니다. 김장 담그는 느낌도 나고~_~

 

초라한 산타의 최후

 그리고 남은 양푼은 산타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가난한 저희들로서는 특별 화형 무대 따위를 만들어 줄 능력이 없었으니까요. 제 17번 양푼에 산타 1기 반응 확인. 지옥의 화염!

 

 ♣블랙크리스마스

 

 - 마사루作(멋지다 마사루 중 발췌)

 

 푹! 푹!

 으아악...

 

 마을은 순간

 피로 물들고...

 

 결국 산타는 그렇게 재가 되었습니다. 이걸로 마왕 산타는 죽어버렸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되도 전혀 슬프고 외롭지 않아! …는 훼이크고 산타를 태워봤자 외롭지 않다거나 슬프지 않을리가 없었지요. 그저 상징적인 행위일 뿐이니까요. 실제로 비빔밥도 맛있게 먹고 산타도 즐겁게 태웠지만 태우고 바로 슬픔을 감싸기 위해 술먹으러 갔습니다(…). 뭐, 저 이후로는 커플이 되버려 크리스마스에 친구들끼리 모여 산타를 태우는 저런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게 되버렸네요. 그렇다고 그 이후로 산타를 안태운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괜히 애꿎은 산타 태우지 말고 커플이고 솔로고 가릴 것 없이 모두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내 아이가 산타가 있냐고 물어보면

 "옛날엔 있었는데, 아빠가 젊었을 때 잡아 없앴어."

 라고 말해야지.

2008년 12월 19일 금요일

[MD]해적판 록맨X3의 공포

 닌텐도 진영의 간판 액션 게임 중 하나였던 캡콤사의 록맨 시리즈. 패미컴 때부터 큰 인기를 얻어온 록맨시리즈는 슈퍼패미컴(이하 SFC)으로 넘어오면서 X시리즈로 파워업 했고 세가팬들에게는 큰 부러움의 대상이었지요. 세가로 나온 록맨은 패미컴 록맨 시리즈 중 초기작인 1~3편을 묶어놓은 록맨 메가 월드라는 타이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올 클리어시 클리어 특전으로 서유기의 캐릭터를 모티브로한 오리지날 적들이 나온다는 나름의 메리트가 있었습니다만 어차피 이식게임인데다가 그 이식작마저 레트로 게임이었기에 세가 팬들은 속속 발매되는 X시리즈를 바라보며 손만 빨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메가드라이브(이하 MD) 롬파일 목록을 뒤져보다보니 MD용 록맨X3가 떡하이 올라와있더군요. 이정도 대작이 이식되었으면 분명 크게 기사화 되었을텐데 이 기사를 게임잡지쪽에서 본 기억이 없고 인기 순위에서도 본적이 없네요. 그렇다면 MD로 록맨X3 롬파일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해적판이겠지요. 어쨌든 해적판이든 아니든 SFC가 원작이고 이건 어디까지나 이식판이기에 얼마나 이식이 잘 되었나 대충 플레이해보았습니다.

 

굉장히 심플한 타이틀화면

 원래 있어야할 오프닝 화면 없이 갑작스레 타이틀 화면이 뜹니다. 타이틀 화면 자체는 SFC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보이지만 옵션 모드가 안보이네요. 애초에 록맨시리즈가 옵션을 건드릴 사항이 그다지 없다지만 왠지 찝찝한 느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때부터 흘러나오는 퀄리티 낮은 음악이 귀에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어쨌든 게임 스타트를 눌러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하고 스테이지 셀렉트로 들어왔습니다(오프닝 스테이지 따위는 당연히(?) 나오지 않습니다). 딱봐도 차이점이 느껴지지요? 원래 스테이지 클리어 후 라스트 스테이지가 출현할 공간까지 감안해서 총 10개의 셀렉트칸이 있어야하는데 그냥 8칸으로 정리되어있습니다. 게다가 1칸은 무려 라스트 스테이지도 처음부터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덕분에 삭제된 벌과 도마뱀(?)에게 묵념. 덤으로 클리어해도 클리어 표시 - 흑백표시 - 따위 생기지 않습니다. 변화가 없네요.

 

 본격적인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호랑이를 골라 스테이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모든 파츠가 개방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겉멋만 들었을 뿐, 파츠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않습니다. 헤드 파츠의 경우 스테이지 시작시 맵을 읽어들이는데 그런건 없고 암 파츠는 4단계까지  차지는 되지만 나가는 것은 2단계 차지샷입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1단 차지샷은 흑백(…). 그나마 제구실을 하는 것이 다리파츠인데 특이하게도 원판보다 성능이 좋아 공중 대쉬를 무한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야말로 MD판 록맨의 밥줄로 이런 특성과 거지같은 컨트롤이 맞물려 원판과 다른 게임 진행을 보여줍니다.

 

 그래픽은 많이 조잡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재현하려고 노력했는데 적 캐릭터들의 색상이 수시로 변화하고 각각의 기믹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 예로 이 스테이지에서 발판 역할을 하는 잠자리는 건드리기만해도 데미지를 주는 완벽한 악역으로 돌아서있고 땅을 갉아먹는 애벌레는 열심히 땅을 갈지만 바닥이 가시밭으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근성으로 플레이해서 보스까지 가면 - 여담이지만 보스전을 상징하는 게이트 역시 없습니다 - 다행히도(?) 보스가 등장합니다. 외형과 색상이 꽤 단순화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잘 재현되어있고 공격 패턴도 나름 비슷하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비슷하게 행동할 뿐으로 디테일하게 살펴보면 많은 공격 패턴과 고유 특성이 삭제되어있습니다.

 

 역시 근성으로 클리어하고나면 승리포즈와 함께 스테이지가 클리어됩니다. 그런데 적의 무기를 습득했다는 표시가 등장하지 않고 바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패스워드 화면으로 넘어갑니다. 록맨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이 전혀 재현되어있지 않네요. 그래서 무기를 습득했나 확인하기 위해 스테이터스 창으로 넘어가려고 PAUSE버튼을 눌렀으나 화면이 살짝 어두워질뿐 푸른 스테이터스 창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게임의 레종데트르는 'MD에도 록맨X 비스끄무리한 물건이 있었다'가 전부로 퀄리티 낮은 그래픽에 거지같은 조작성 등 해적판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면서 외형만 따라했을 뿐 특유의 게임성을 전혀 재현하지 못하고 있고 이것만의 오리지널리티도 없는 해적판 중에서도 B급 해적판인 쿠소게이니 절대 플레이해보지 않으실 것을 권장합니다.